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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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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의 발 중국에서 나고 자란, 펄 벅은 왕룽과 오란을 내세워 중국 땅을 그렸다. 홀린 듯 대지에 빨려 들어가, 앉은 자리에서 다 봤다. 40년이 지나도, "대지" 속, 오란의 발을 잊을 수 없다. 전족하지 않은, 오란의 발을 왕룽이 싫어하고, 오란은 부끄러워 했다. 실은 박지성의 발이요. 강수진의 발이다. 오란의 발은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나는 발만은 발레리나 강수진을, 캡틴 박지성을 , 그리고 오란을 닮았다. 티눈에 성한 발톱이 없고, 색마저 거무 튀튀하다. 내성 발톱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수태, 발 크림이며, 연고를 선물 받았으나 양말이 답답하여 맨발로 다니다보니, 발 뒤꿈치마저 거칠고 갈라지고 엉망이다. 나는 작년에는 하루 평균 9키로 가량 걸었고, 올해도, 매..
워낭소리 결혼식이 끝나고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땋아서,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올린 머리를 풀면서, 이걸 어떡하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꽃대궐같은 상을 받으면서도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신혼집에서 결혼전 물건을 택배로 받았을 때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병원에서 출산 후 산후 조리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기와 단 둘만 남았을 때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이제 어떡하지 황망하던 우두망찰하던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면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멈춰 버린 거리에서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졸업은 했지만, 갈 곳도 살 집도 아무것도 없던 내가 홀로 서소문에서 서울역 쪽으로 가다가, 이제 어떡하지. 운전 면허를 따고 차를 사서, 연수를 받고서도 처음 차를 운전할 때 이제 어떡하지. 두려움, 이물감, 달..
증명 사진 거의 30년만에 증명 사진을 찍었다. 주민 등록증, 운전 면허, 여권 갱신위해, 증명사진, 여권 사진을 찍었다. 맘 까페며 주부 까페, 대학가에서 추천하는 곳으로 골랐다. 어쩌면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머리를 감고 화장도 적당히 했다. 3대째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곳이었다. 모든 것을 사장님이 알아서 하신단다. 원본을 보니,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구나 싶었다. 좌우 대칭이 맞지 않고, 눈은 작아지고, 살은 쳐지니 이중턱에, 얼굴에는 잡티도 한 가득이다. 목은 주름이 선명한데다 어쩐지 굵고 짧아진 둣하다. 사람들이 2번 놀란단다. 증명 사진을 찍은 후 놀라고 보정 후 달라진 모습에 더 놀란다신다. 사장님은 지우개 같은 걸로, 쓱쓱싹싹 지우신다. 쳐진 턱을 쳐내고(양악 수술이네), 눈꼬리를 올리고(상안검인..
등잔 밑을 밝히는 한 번역가의 루틴을 들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책상에 앉는 것이 근무의 시작이라고 했다. 책상의 램프를 끄면서 일과가 끝난다고 했다. 책상 램프를 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방의 스위치도 아니고, 형광등도 아니고, 책상 위의 램프를 내리면서 하루가 끝이 나다니. 여자 친구에게 선물받은 도자기 인형이란다 , 그녀와 헤어진 후 물건을 정리하려는데 도저히 버리지 못해 흰색으로 페인트칠해 버렸단다. 그러고서, 램프 아래 두었더니, 제 자리구나 싶더란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이야기가 선명하길래, 어렵사리 그 도록을 찾아냈다 한데 내 기억속의 도자기 인형과 많이 다르다 남의 이야기는 내게 흘러 들어와서 내 이야기로 변해버린다. 오롯이 전부 내 것은 없다 . 이미 흰 빛으로 덧칠한 그녀가, 등잔불 ..
리치몬드에서 아침을 소세지 굽고, 달걀 프라이해서, 구운 빵, 샐러드와 함께 먹는 브런치가 유행했다. 예약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브런치 전문 식당도 많았다. 아이들 학교 보낸 후, 엄마들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밥 먹는 식당은 지금도 성업 중이란다. 방학내내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없었던 엄마들이 개학 후에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느즈막이 일어나서, 간단하고 여유롭게 즐기는 아침 겸 점심,, 삼시 세끼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진지 꽤 되었다. 현대인의 신체 활동이 줄어들기도 했고, 먹을 것이 넘쳐 나고, 영양 과잉으로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하루 2끼면 충분하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간단히 먹고, 저녁은 가족과 함께 혹은 약속으로 제대로 먹는다고 한다. 하루 2끼면 충분하다는 말을..
homeless VS houseless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에펠탑이 아니다. 루브르도 아니다. 센 강도 아니다. 까페였다. 빠리 시내의 좁고 낡지만 무지하게 비싼 집에는 없는 거실이, 주방이 바로 거리의 까페란다. 빠리 시내의 좁고 낡지만 무지하게 비싼 집에는 옷을 둘 곳이 없어서, 그들의 스타일은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세계 최고의 멋쟁이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소유는 최소로 하고, 도시에 외주주기, 도시와 나누기, 도시로부터 빌리기 그러니까, 빠리의 공원, 미술관, 까페, 레스토랑, 도서관, 강을 전세계와 나누며 함께 걸으며 보고, 이야기하고 집에, 아니 방으로 돌아가 지쳐서 곧바로 잠들것, 아무리 파리의 야경이 시끄러워도 일찍 푹 잠들것, 도시더러 밤새 반짝이라 시키고,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일어날 것.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