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기후를 나타내는 순 우리말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가, 높새 바람, 여우비, 마른 장마, 함박눈, 꽃샘 추위... 한 며칠 반팔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볼 정도로 따뜻했던 날씨가 3월되더니 또 추위가 기승이다. 오늘은 아예 먼지 바람이 강하게 불어대, 길고 두터운 옷으로 무장한 행인들을 날려버릴 듯하다. 이런 추위에도 사실 봄은 이미 완연하다. 나무들은 이미 꽃을 피워낼 태세다. 소름처럼 이미 꽃망울이 돋아있다. 나 역시 목을 감싸는 롱코트 안에 원피스를 입었다. 반투명 꽃 자수 레깅스를 신었다. 양말없이 맨발로, 흰 운동화를 신고 시장에 간다. 봄을 앞두고 닥친 이런 추위를 기억한다. 내 꽃이 막 피려는 차, 추위가 닥쳤고, 나는 황망했다. 91년 3월에 눈이 무릎까지 쌓이고, 비까지 내려 길은 추적추적..
4년마다 한번 2월 29일에
망원동에서 연지를 만났다. 창덕궁 앞 데비스 키친에 데려가려고 갖은 애를 써 겨우 예약했건만 연지는 탁주를 마시고 싶단다. 1시간 이나 늦게 우여곡절 끝 5시에 망원역 도착하니 근처 까페서 "아몬드"를 읽고 있다. 연지는, 연지가 마시던 커피를 들고, 망원시장 "복덕방" 갔더니, 6시 들어오란다. 5시 20분, 그 추위에 연지와 어슬렁 대며 기다린다. 근 10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약속이 있었다. 한달에 한번 외출할까 말까 한 내게 힘든 일이다. 체력도, 마음도 모두 딸린다. 일상은 엉망이 된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먹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늘 어색하고 어렵다. 약속 장소로 가면서, 늘 후회한다. 어쩌자고 내가 만나자 했을까, 지금이라도 도망가버릴까,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 ..
체온을 올리면
찜질방에 가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보긴 했다. 수건으로 양머리하고 앉아 식혜며, 구운 달걀 먹는다는데 한번도 가본 적 없다. 삼삼 오오 모여서, 수다 떨면서 누워 뭔가 끊임없이 먹고, 시간 보내는 거 나랑 맞지 않는다. 지인이 면역 공방 가자셔서, 만사 제치고 갔다. 찾아 보니, 찜질방 비슷하게 생겼지만, 여북하면 싶어서 일정 다 바꾸면서 갔다. 명동 정화 예술 학교 부근이다. 길치인 내게 유럽 호텔의 콜보이 차림의 지긋한 분이 가르켜주셨다. 외진 곳이라 좀 두렵다. 만일 외국에서였다면 얼씬도 하지 않을 곳이다. 어둑신하고 곰팡내, 카펫 묵은 내 나는 계단을 내려가서, 오른쪽, 다시 왼쪽 다시 꺾어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화교와 동남아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분이 카운터에..
소금 빵-모스크바의 신사
좋아하는 음식을 물은 적이 있다. 떡볶이, 초코렛, 치킨 등 은 예상했지만, 곱창, 돼지국밥은 의외였다. 대부분 그 당시 유행하는 음식을 꼽는다. 대만 카스테라, 공차 였다가 요즘은 탕후루, 마라탕이라 대답한다. 한데 누군가 "소금"이라고 답했다. 아버지가 요리사셔서 귀한 소금을 여러가지 맛볼 기회가 있었단다. 소금 알갱이를 꺼내 혀 끝에 굴리면, 단맛, 쓴 맛, 짠 맛, 비린 맛, 흙 맛이 느껴진다 했다. 내게 묻는다면 "빵"이다. "빵"을 가장 좋아한다기보다는 "빵"을 마음껏 먹고 싶다. 어릴 적 "빵"은 내가 만질수도 없는 것이었다. 책이나 영화에서만 존재했다. 상상하고 바라만 보면서 애를 태웠다. 빵은 축제였고, 서구, 문화, 세련, 부유의 상징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내 꿈은 "아침은..
강남역 에번저스, 택시에서 부럼 ㅎ
박근혜 정권때 강남역에서 어벤저스를 촬영했다 촬영팀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완전 통제한 채 한국이 영화 어벤저스에서, 멋지게 나오길 기대했다고 한다. 그 결과, 스쳐지나가듯, 강남역 질주 추격신이 나왔다고 들었다. 오늘은 우리도 강남역 파이브 가이 어벤저스 팀이었다. ㅎ 출연진: 박태영, 이유진, 신현우, 이한나, 그리고 택시 운전 기사, 파이브 가이의 햄버거를 먹었다. 개점 당시 12시간 대기했던 다섯둥이네가 ㅎ이제는 2-3시간 이면 먹을 수 있다고 했고, 장조카가 서울 온 기념으로 먹이고 싶어서, 또 대기를 걸었다. 우리 앞은 무려 204명의 어벤져스들, 그 사이에 조카는 피시방 가고, 나는 근처 까페서 기다리기로 한다. 원래 순간을 위해 몇 시간은 물론, 몇 년을 때로는 몇 십년 기다리는 게 인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