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처럼.
30년전, 헨리 8세와 천일의 앤, 앤 블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그려진.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를 들고 다녔다. 영어 영문학과의 교과서였다. 습자지 처럼 얇은 종이가 수백장 엮인 아주 두툼한 책이었다. 과 친구들은 마분지처럼 두툼한 종이로 박스를 만들어 싸서 들고 다녔다. 그 두꺼운 책을 품에 안고 학교를 오가며 으쓱했더랬다. 이화 대학 영어 영문학과 학생이란 건 엄청난 자부심이었으니까, 그 책 표지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철의 여인, 엘리자베스 여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무적함대를 물리친 군주, 그녀는 왼쪽을 바라보며 허리를 잔뜩 죄고, 턱 끝까지 바짝 올리고, 팔과 어깨를 과장해 부풀린 채, 갖가지, 보석과, 모피로, 벨벳으로 호화..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이다. 신구, 박근형의 연극을 보기 위해서 책을 봤다. 구순에 가까운 연극 배우가 장기 공연을 한다는 데, 연극 배우하는 제자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남산 달오름 극장에서 봤다. 모든 예술 작품은 제목이 그 반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 " 고도"란 작가 사무엘 베케트도 잘 모른다고 한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도 모르고 계속 기다린단다. 고도란 누구일까, 미래, 희망, 예수, 구원, 사랑, 결혼, 가족, 죽음, 기억, 치매,........ 그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매번 달라진다. 희곡을 읽을 때마다, 연극을 볼 때마다 달라진다고 한다. 나는 1부 시작하자마자 졸았다. 함께 간 지인에 따르면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서 자기도 했단다. 머리를 흔들면서 신나게..
봄밤, 하루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총선이 끝났다. 꽃은 지니 녹양방초가 싱그럽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려 대청소를 했다. 서재를 정리하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많아서 놀랐다 . 나는 그의 소설보다는 산문을 좋아한다. 특히 달리기, 외국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아주 인상깊게 봤다. 꽤 괜찮은 여행기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많은 하루키 산문집을 가지고 있는 줄이야... 학생들 중간 기말 시험 후, 시내 서점에 들러 한권씩 샀구나, 한 시간 가량 그의 산문을 읽으며 마음과 머리을 달랬구나 싶다. 5, 7, 10, 12월 마다, 난 광화문 교보에 홀로 들러, 난, 서가에서 위스키 한잔 마시고 온 셈이다. 무려 20년 넘게, 일을 줄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나와 마주보게 되었다. 밤마다,백포도주를 한잔씩 마신다. 성탄절 선..
봄밤, 꽃놀이
갑자기 꽃이 폈다. 갑자기 꽃이 졌다. 어어어어 하는 사이 꽃이 피고 졌다. 아마 죽기 전에도 난 분명 그럴 듯, 어어어어어 하는 새 죽는구나 싶을 듯, 어째서 난 순간을 누리지 못할까, 어째서 난 집중을 못할까, 기후 변화가 두려웠다. 이렇게 빨리 더워지고 꽃이 삽시간에 폈다가 제대로 볼 새도 없이 져버리는 게 두려웠다. 올해도 작년처럼 여의도에 꽃놀이하러 갈까 하다 말았다. 작년에 여의도 굴에서 "안창남"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인, ㅎㅎ 그러니까, 안창남은 꽃보다 백년 앞서 떨어졌던 사람. 여의도의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서, 생떽쥐 베리가 어떤 사람 사람일까 상상해봤다. 백년 전 홀로 하늘을 날던 사람,,, 사실 꽃놀이보다, 요즘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솔찬하다. 아주 오랫만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