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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역사 어릴 적 아이는 그렇게도 기차를 좋아했다. 지하철을 타면서도, 놀이공원에 가서도, "기차" "기차" 하면서 내내 눈을 빛냈다. 기차는 자주 못타니 지하철이라도 싶어서 2호선 녹색 순환선을 몇 바퀴씩 돌던 추억도 있다. 모노 레일 앞에서, 공룡 바라보듯, "기차" "기차" "기이이이이이이이차"라고 좋아하던 아이는 큰 머리, 짧고 통통한 팔 다리, 토실한 엉덩이, 둥글고 귀여운 어깨를 한 장난꾸러기 꼬마 기관차였다. 자연스레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했다. 몸은 기차 , 얼굴은 사람이라 어떨때 좀 무섭다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차놀이를 하곤 했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이"는 곧 "세계로 가는 기차"를 탄다 세계로 가는 기차 타고 가는 기분 좋지만 그대 두고 가야 하는 내 마음 안타까워, 들국화의..
라면은 은하철도 999에서 "산에 진달래가 필 텐데요.. 그 꽃 따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 소설 "토지"의 별당 아씨가 지리산에서 죽어가며 구천에게 말하듯, "그 계절에 피는 꽃을 보고 그 절기에 먹어야 하는 음식들을 먹으며 당신이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할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오.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녘의 리정혁이 남조선 윤세리에게 서신 보내듯 봄 여름 가을 겨울 그와 화전을 비롯한 계절 음식을 나눠먹으며 살 줄 알았다 . 결혼한다면 내 짝은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사이에 "라면 먹고 갈래요?"는 그러니까, "졸리니 아침을 알아서 드세요," 내지 "마땅한 반찬이 없으니, 어떡하죠." 뭐 그런 뜻이다. 마음에 들지만, 망설이는 이성을 내 쪽으로 당겨오려는 수작이 아니다..
그리운 금강산, 백두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내게 하나같이 말했다. 영험하고 신령한 산이라고, 하늘이 허락해야 겨우 백두산을 볼수 있다고, 천지연을 보는 순간 통곡하며 걷게 된다고, 백두산을 꼭 가보라고, 물론 나도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 다만 장백산이 아닌 박달, 혹은 배달산을 북한에서 오를 작정이다. 한데, 난, 사실 북녁이 열린다면 제일 먼저 금강산에 갈테다. 그리운 금강산을 밟고 싶다. 봄 금강, 여름 봉래, 가을 풍악, 겨울 개골이라 불린다는 산. 금강산은 여성의 산이다. 박씨 부인의 친정이 있는 곳, 포상으로 무엇이건 들어주마던 정조에게 거상 김만덕이 유람하도록 청원한 곳, 전후 뱃길이 열리자 한복 연구가 이영희 선생님이 한복 화보를 찍은 산, 임진 왜란을 끝내는데 큰 공을 세운, 이시백의 딸, 박씨 부인이 나고..
도구의 인간 - 그대의 긴 팔로 국민 학교 시절 (초등학교로 바꾸면 그 맛이 살지 않아서요 ㅎ) 민방위 훈련할 때의 거리를 기억하세요? 공습 경보 싸이렌 울린 거리에는 아무도 없이, 시간이 멈춘 듯, 적요하던 기억이요. 어느 오후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도 없고, 지금 언제인가, 여긴 어딜까 낯설기만 했던 적 있으시죠? 시계를 보니. 3시라 아 뜨거라, 가방 멘 채 학교 가다가, "공일인데 학교는 왜가냐"고, 지나가던 사람들과 함께 웃던 일이요. 그런 기억처럼 꿈인지 생시인지 아리까리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올리비아 핫세와 레오나르도 파이팅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서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었어요. 영화 속에선가, 아니면 꿈에선가, 느닷없이 팔이 끊임없이 늘어나더니, 꽤 먼 누군가에게 편지나 먹을 것을..
뉴욕의 피아노맨 현우야 ! . 병원 실습에 쓸 가운과, 청진기를 샀다며. 청진기를 귀에 걸고, 내 가슴에 대보며 웃었지 그리곤 다시 내 귀에 귀꽂이를 넣고, 고무관으로 "사랑한다"고 천둥처럼 말해서, 놀래켰더랬지. 현우야, 중 3때 피아노 전공하러 서울 예고 가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니? 아빠가 무슨 소리냐고, 아예 대꾸도 않으시던 거 엄마도 전혀 뜻밖이라, 일단 네가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하는지를 보자고 했던 거, 막바로 마음 속으로 음악 전공은 도대체 어떻게하는 걸까, 싶더라, 엄마는 네가 악기 하나는 능숙하게 다루고 평생 연주 할 수 있기를 바랬어, 수영, 자전거, 축구, 농구 등의 스포츠를 열렬히 즐기고 , 넓이는 모르겠으나, 깊이있게 독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랬단다. 넌 7살부터 김재경 피아노에 다니기 시작했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낱말은 없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단다. 그도 엘베섬에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어휘는 없었다"라고 고쳤을까, 아니, 나폴레옹은 “불가능”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과 정의가 있었으리, 끝끝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못박았으리라. 내 사전에 "참다"란 단어도 그랬다. 싫어하는 말이었다. 어려운 말이었고, 케케묵은 말이었다. 비슷한 말로 견디다, 인내, 자제 등이 있다. 내 사전 속 "참다"는 가난하다. 미련하다 선택하지 않은 불의와 불익을 속수무책 당한다... 였다. 그런데 내 사전은 가끔 개정판이 나온다. 사라지는 말들도 있으나 새로운 말들이 생겨나기도 하니까, 시대에 따라 그 뜻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이번에 내 사전에 등재된 "참다"의 뜻은 이렇다. 잠깐 반응을 보류한..
의정부 경전철 타고 군무를 의정부는 아주 먼곳, 예비군 훈련 받는 곳, 냉면과 부대 찌게, 장인 약과가 맛있다는 동네, 실은 미군 부대의 깊고 깊은 흉터가 남아있는 곳 처음 가본 의정부는 서울보다 2-3도 낮았다. 또 음식점과, 유흥주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데, 경전철이 지나고 있었다. 소래포구 협궤열차처럼, 조그맣게 빛나며 의정부 하늘을 지나다녔다. 오래된 도시의 전차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의정부라면 경전철을, KB 배구단을, 노란 유니폼입고 신나게 춤추며 응원하던 의정부 사람들을 기억할 거 같다. 의정부의 사람들도 나처럼 봄부터 가을 까지는 야구와 축구를 보고 배구와 농구를 보면서 겨울을 나겠지 물론 4년마다 한번씩 올림픽도 참가하고(출전은 아니다. 물론 ㅎ) 다시 4년마다 한번씩 월드컵도 나가고, (물론 출..
우륵을 들으며 걷다, 눈이 푸지게 내렸다. 눈을 맞으며 걸었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걷다가, 아니야, 눈 소리를 들어야지 싶어, 이어폰을 뺐다. 눈이 내리는 소리, 눈이 날리는 소리, 눈이 쌓이는 소리, 눈이 녹는 소리, 눈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다시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걸었다. 반클라이번 콩쿨 우승 후, 그는 "우륵의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은(哀而不悲)’ 가야금 뜯는 소리를 상상하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고 답했다. 콩쿠르 파이널인 이 곡을 “어떤 울분을 토한 다음에 갑자기 나타나는 어떤 우륵 선생의 어떤 가야금 뜯는 소리가, 그런 부분이 있는데,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에 대한 이야기(로 담아냈다)”라고 했다. 18살 소년, 임윤찬은 우륵의 "애이불비"로 피아노를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