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먹는 나날.
미즈카미 쓰토무, 정진 요리선근, 정신과 의사 하지현의 추천으로 봤다. 사찰 요리라고 쓰려다 멈춘다. 절밥, 공양이라야 더 맞겠다. 저자가 사찰의 행자로 지내던 시절 노스님을 모시며 한 부엌 살림이 평생으로 이어진 이야기다. 나는 요사스런 소스, 요망스런 가니쉬를 앞세우는 음식에는 관심이 없다. 무던하고 소박하되계절을 나고 자란 고장을자신만의 맛과 향을 온전히 전해주는 음식을 원한다. 홍옥과 햅쌀과 감말랭이, 군밤, 굴국밥 같은,,,봄 나물과 여름 콩국, 가을 과실, 겨울 김장 김치와 고구마 같은, 그냥 씻어서, 양념도 거의 하지 않고, 껍질까지 버리는 거 하나 없이 통째로 다 먹기를 최고로 친다. 절 주변 흙에서 구해다 어둑신한 부엌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련해, 천천히 몸속으로 들어가는 자연..
해변의 묘지-봉하마을
평생 어머니 말을 듣지 않다가, 뉘우친 청개구리들은 유언대로 해변가에 어머니를 묻고, 물이 불어 떠내려갈까, 개굴개굴 운단다. 남쪽 바닷가가 고향인 나는 명절마다, 바닷가 묘지를 찾아 간다.서울서 나고 자란 이들도 나처럼 돌아갈 고향이, 돌아갈 바닷가, 개골개골 떠나가라 울어옐 묘지가 있을런지.나는 봄 가을, 바다로 돌아가 무덤를 찾아 헤맨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 애나벨리, 혹은 그녀를 잃은 연인의 묘지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묻힌 곳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많지만, 지난 가을, 부곡의 아버지 성묘 드린 후, 봉하 마을을 찾았다.노무현 대통령을 모신 곳.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29번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노란 바람개비를 날리며 사람들이 ..
해바라기...
8월의 해가 졌다. 내일부터는 9월의 해가 뜬다. 팔월의 해는 뜨거웠다. 해바라기는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가장 고흐다운 작품은 해바라기라고 생각한다.해바라기에는 그가, 내가, 사람들이 겹쳐보인다.서로를 애타게 바라보며 다가가려다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들, 그러다가 화가야 말로, 화가의 눈이야말로 태양이지 싶었다. 그의 눈과 손으로 대상이,일상이, 우리가 해바라기로 피어나 화폭 속에서 다시, 영원히 또 다른 빛, 우리의 눈과 마주칠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8월의 해는 저물며 반대편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도 역시 그렇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나팔꽃을 찍었다.
종의 기원
모교 본관 학적부에 들렀다. 아마 30년만의 일인 듯, 벽돌 건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쇄락을 넘어서 퇴락을 느꼈다. 예전처럼 어두침침한 실내에 퀴퀴한 공기는 고여 혼들이 떠돌아 다닌다해도 믿길 지경이었다.본관 앞 잔디에 선 김활란 박사 동상은,,,,, 처참했다. 올해초 서울 대학에서 느낀 바도 그러했다. 대학의 시대가 어쩌면 저물어 가고 있구나,묵직한 목조 문 속 젊은 직원들이 어색하리만큼 낡았다. 겨우 건물 외관만 전통과 역사를 지탱하고 있을 뿐 내부는 힘과 활기를 찾을 길 없었다. 나오는 길에 벽감 속 종을 봤다. 학교 종이 땡땡땡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들 기다리신다. 고녀들을 불러오던 종소리가 정녕 들리지 않았다. 종의 기원이 무엇이던가, 가끔 난, 무슨 약인가를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