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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사냥꾼에서 홍채 사냥꾼으로 동사무소에 공인 서류를 떼러 갔다. 인터넷으로 떼면 무료, 무인 자동 발급기는 500원 창구에서는 1000원, 기계에서는 늘 그렇듯 잘 되지 않는다. 역시 나는 기계가 싫어해 창구 가서, 가족 관계 증명서 상세를 부탁하다가, 손가락 지문을 잘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공무원이 날 도와준다. 지문을 확인해보겠노라며 엄지르 여러번 대보았다. 물로 닦아가며 반복해서, 왼손 엄지도, 나는 남보다 지문이 많이 연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른쪽 검지 확인해보더니 엄지보다는 낫다며넛, 이걸로 등록을 하려면 사진을 들고 와서, 신분증을 다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쩌자고, 지문이 다 닳아버렸을까, 지문이 다 닳도록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래서일까, 아이폰이나, 미니도 암호 입력할 때마다 고생을 한다..
안개속에서 휘슬을 불다.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터너와 휘슬러, 그들의 그림은 영국의 안개로 자욱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 전에는 영국에 안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럴리가, 런던은 안개의 도시다. 템즈강을 따라 올라오다보면 유속이 느려지는 늪지에 로마군들이 정박해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런던, 런던은 유럽의 무진이다. 런던 사람들은 몇 백년 몇 천년 동안 안개 속에서 살았다. 안개에 어둠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오리무중이 된다. 그 안개가 얼마나 위력적인가하면 과학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일지라도,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아도 모든 공공 기관들이 문을 닫을 정도라고 한다. 영국은 음악이나 미술보다, 문학에서 인류 문화사에 기여했는데 안개를 비롯한 날씨 덕이라 한다. 해가 들지 않고, 운무에 휩싸여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안개속에서 ..
El condor passa-오감도 "오감도"라는 이상의 시가 있다. 경성제대 건축과출신인 이상은 "조감도" 대신 "오감도"란 시를 썼다. 까마귀가 본 풍경이랄까, "철새는 날아가고" 라고 번역된 "El condor passa" Simon & Garfunkle 노래도 있다. 독수리 지나가다, 정도인 거 같은데, 초겨울 한강를 건너다보면 철새들이 V자를 이루며 날아간다. 어쩔 때는 하늘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새들이 무리지어 계속해서 날아간다. 밀물이 밀려 오듯이 새들이 끊임없이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죽은 이의 영혼이 새로 변신한다는데, 죽은 이가 새가 되어 산 사람에게 인사하러 온다던데, 한강 가를 떼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그렇겠구나 싶다. 이승을 짊어지고 저승으로 떠나가는 행렬같다. 아주 먼데로 이주해간다는데, 남..
손기정 평화 마라톤 대회-한강의 기적 결혼 전 남편과 약속했다. 결혼 5주년에는 5키로 마라톤을 10주년이 되면, 10키로 마라톤을 20주년이 되면 하프 마라톤을 40주년이 되면 풀코스 마라톤을 함께 뛰자고 부부가 된지 5년째 5키로 뛰고서라고 쓰고 걷는다고 읽는다, 아니 기어갔다, 아니 드러누워 있었다. 남편은 이럴거면 이혼하자고 했다. 그러고도 여러번의 헤어질 뻔했다. 헤어질 결심은 셀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보스턴, 런던, 도쿄, 뉴욕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고, 아니, 춘천 마라톤도 꼭 달려보고 싶다. 봄이 오는 시내, 춘천, 한데 춘천은 봄이 가장 늦게 오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춘천이라 불렀으리. 봄이 쉬 온다면 굳이 춘천이라 부를 리 만무하다. 손기정, 명문 양정고보 출신이다. 아버지가 말년에 입원해 계시던 동아대학 병원 옆에..
장욱진 자화상VS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장욱진의 자화상을 보면서 곧바로,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떠올랐다. 장욱진도 고흐의 그림을 본 적이 있겠지.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 뿐이다. " 1974년 9월호 길 노란 밀밭(논일지도) 까치혹은 까마귀 하늘과 구름, 비슷하다. 다만, 앞에 연미복같이 의관을 정제한 화가가 서있다. 구두에 모자, 우산까지 든 화가가 붉은 길위에 서있다. 겨우 손바닥만한 아주 작은 그림인데도 태산처럼 큰 그림 같았다. 자살 하기 직전에 고호가 그린 그림으라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같으면서 달랐다. 훨씬 크고 건강하고 유머 넘치고, 활달하다. 장욱진은 자신을 그..
군고구마와 초코렛처럼, 해남의 고구마를 사서 구웠습니다. 두툼한 그릇에 고구마를 넣고, 오래 구웠습니다. 꿀고구마라고 하던데, 밤고구마와 호박 고구마의 장점만 가져와 달고 맛있다고 해요. 사실 전 밤고구마파인데, 예전에도 물고구마 파인지 밤고구마 파인지 서로 가르고 그랬죠. 부어먹는가, 찍어 먹는가 비빔 냉면인가, 물 냉면인가, 전 들큰한 식감이 질색이라, 팍팍한 밤고구마파죠 물고구마의 계보를 잊는 것이 호박고구마, 진뜩거리며 달디단 고구마라던데, 역시 질컹거리는 질감이 싫어서요. 그런데 그 두가지를 절묘하게 합친 꿀고구마가 나왔다길래 구웠지요. 과연, 밤고구마처럼 포실한 질감과, 달디달면서 노란 속살은 호박 고구마를 닮았네요. 막 구운 고구마의 맛을 어디다 댈까, 한도끝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거 같고,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서울에 다시 장욱진 들르다. 덕수궁에 장욱진이 다녀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사람들은 거리를 꽁꽁 싸매고 다녔다. 나는 궁궐이 가득한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나는 한강과, 남산이 있는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나는 신혼 여행도 서울의 종이 울리는 거리로 갔다. 종이 울리는 거리, 환구단이 보이는 조선 호텔에서 그와 밤을 보냈다. 그 서울에 장욱진이 다시 찾아왔다. 십년전 서소문의 호암 미술관에서 장욱진을 만났다. 아이같은 그림이라고 했다. 동년배의 김환기도, 이중섭도, 박수근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한국 남자가 이렇게 많다, 김환기의 세련된 추상성, 이중섭의 뜨거운 낭만주의, 박수근의 무덤덤한 뚝심을 사랑한다. 장욱진이 다시 서울 덕수궁에 들렀다. 그는 엽서만큼이나 작은 화폭에 그림을 그렸고, 액자를 씌웠다. 액자는 때..
아마추어처럼, 피아노 홀릭이란 유튜브 채널을 듣고 있다. 공중파 피디인 주인장은 오래도록 피아노를 쳐왔고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악보가 몇단짜리 서가에 가득하다. 그 장면이 없었다면 내가 그의 말을 믿었을까, 나무 책장, 종이 악보, 녹음 테이프 같은 물적인 증거가 있었으니 그의 말을 신뢰했겠지. 그는 음악을 들리게 도와 주는 사람이라 했는데, 어제는 95년 무렵 연대앞 까페에서 3개월간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풀었다. 연대 다니는 잘 생긴 대학생이 밤마다, 까페에서 유재하나, 뭐 그런 노래를 연주했단다. 사장이 가져다 둔 큰 와인잔에 팁이 꽤 많이 쌓였다고 한다. 포스 가득한 중년 누님들이 맥주를 올려두었다는 말을 들을면서 나는 절대로 그렇게 늙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저씨들이랑 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