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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 머리로 신이나 삼아줄걸 귀촉도 서 정 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1943년 작이다. 벌써, 80년전에 태어난 시다. 백발이 되어 백세를 바라보는 시다. 나는 서정주의 시를 좋아했다. 일단 시인의 이름이 시인다웠다. 서정 주라니. 서정의 나라, 서정의 술, 서정의 주인 등등, 호는 더 마음에 들었다. 미당이라..
깨를 갈다. 최유라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유라의 몇 마디를 기억하고 있다. 한참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느라, 정신없을 때, "아스티에 빌라트" 찻잔을 보고 반했단다. 굉장히 부담되는 가격이었는데, 일단 찻잔 하나 샀다고 한다. 아침 일과를 끝내고, 찻잔을 들고 앉았다고 했다. 좁은 집이라, 4인용 식탁이 겨우 들어가는 부엌에 그 찻잔을 들고 앉았다고 했다. 흰 찻잔을 들고 있는 30대 주부 주위로 가로등이 켜진 것 같았다. 연극 무대 같았다. 어떤 그림 같았다. 나는 그녀의 엄청난 그릇을 보기도 전에 질려버렸고 정녕 하나도 부럽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30대를 버티게 해준 흰 찻잔, 그녀가 요리할 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나물류를 무칠때 마지막에 깨를 조그만 절구에 ..
신륵사 가람 배치 뭐 그런 말할 자격이 없으나, 그 절은 좀 이상했다. 일단, 산을 등지고 강앞에 있었고, 불이문이니, 일주문의 위치도 절 안에 정자가 있는 것도, 대웅전없고, 사당 안에 동종과, 탱화가 그려진 것도, 다 신기했다. 여주는 단청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진정한 가람 배치는 자연을 고려해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국보, 보물, 지방 문화재 등의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할 수 있는가, 절 앞의 벽돌로 된 탑도, 극락전 앞의 탑고, 뭔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데도, 뭔가 달라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마음에 든다. 여주는 풍요로운 땅이었다. 햇살과, 흙이 기름진 곳이었다. 그곳의 강가 사찰이라니, 시내에 있는 절이라니. 다시 차가 있으면 좋겠고, 다시 여행을 다니고 싶고, 하루에 여러..
남자는 시계지-세종대왕릉 나의 큰 외삼촌은 외자 이름이다. 이 영. 참 이상했다. 오얏 리, 꽃뿌리 영이라고 했다. 내 이름도 특이하기에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가를 잘안다. 삼촌은 그러니까 오얏의 꽃뿌리, 삼촌의 삶이 그리 꽃다웠었나, 잘 모르겠다. 꽃다웠던 때도 있었겠지. 큰 조카인 내게 삼촌은 첫 손목 시계를 사셨다. 공책과, 펜과, 책들, 그 모든 것들 아낌없이 주셨다. 세종 대왕릉도 영릉이란다. 꽃뿌리 무덤, 그리고 조선 시대 최초의 합장릉이란다. 한글을 만든 세종 대왕의 무덤이라니,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멀어도 가서 뵈야지. 엄포에 비해 날씨는 견딜만 했다. 바람은 쌀쌀했으나, 햇살이 도탑고 따수웠다. 미세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왕릉으로 올라가기 전, 들른 광장이 흥미로웠다. 중국의 황..
물꽃의 전설 물꽃의 전설을 봤다. 영화관이 아닌 마포 중앙 도서관 홀이었다. 낮에는 미세 먼지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더니, 밤에는 찬 바람이 휘몰아쳐 거리에도 강당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추웠다. 깜깜했고, 추웠다. 나는 가죽 자켓을 입어서 덜덜 떨면서 봤다. 현순직. 1930년생, 상군 해녀, 오전에 "노르마"라는 오페라를 보다 가서일까, 여사제 이야기, 그러니까, 전문직 여성 이야기로 보였다. 고희영 감독도 그렇고, 현순직 제주 해녀 역시 전문직 여성이다. 머리 속에는 이미 바다 지도가 새겨져 있고, 몸으로 손으로 감으로 요령을 평생 익혀온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캄캄하고도 따뜻하면서, 춥고도 두려우면서 아낌없이 베푸는 바다 속에서 물꽃이 되었던 이야기이다. 사실 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말이 필..
난독증 나는 공문서도, 나는 매뉴얼도 나는 설명서도 잘 못읽는다. 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실용적인 글 자체를 읽고 이해하지를 못한다. 사람의 마음도 표정도, 말도, 상대방더러 탓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자
지문 사냥꾼에서 홍채 사냥꾼으로 동사무소에 공인 서류를 떼러 갔다. 인터넷으로 떼면 무료, 무인 자동 발급기는 500원 창구에서는 1000원, 기계에서는 늘 그렇듯 잘 되지 않는다. 역시 나는 기계가 싫어해 창구 가서, 가족 관계 증명서 상세를 부탁하다가, 손가락 지문을 잘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공무원이 날 도와준다. 지문을 확인해보겠노라며 엄지르 여러번 대보았다. 물로 닦아가며 반복해서, 왼손 엄지도, 나는 남보다 지문이 많이 연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른쪽 검지 확인해보더니 엄지보다는 낫다며넛, 이걸로 등록을 하려면 사진을 들고 와서, 신분증을 다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쩌자고, 지문이 다 닳아버렸을까, 지문이 다 닳도록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래서일까, 아이폰이나, 미니도 암호 입력할 때마다 고생을 한다..
안개속에서 휘슬을 불다.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터너와 휘슬러, 그들의 그림은 영국의 안개로 자욱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 전에는 영국에 안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럴리가, 런던은 안개의 도시다. 템즈강을 따라 올라오다보면 유속이 느려지는 늪지에 로마군들이 정박해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런던, 런던은 유럽의 무진이다. 런던 사람들은 몇 백년 몇 천년 동안 안개 속에서 살았다. 안개에 어둠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오리무중이 된다. 그 안개가 얼마나 위력적인가하면 과학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일지라도,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아도 모든 공공 기관들이 문을 닫을 정도라고 한다. 영국은 음악이나 미술보다, 문학에서 인류 문화사에 기여했는데 안개를 비롯한 날씨 덕이라 한다. 해가 들지 않고, 운무에 휩싸여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안개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