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
가람 배치 뭐 그런 말할 자격이 없으나, 그 절은 좀 이상했다. 일단, 산을 등지고 강앞에 있었고, 불이문이니, 일주문의 위치도 절 안에 정자가 있는 것도, 대웅전없고, 사당 안에 동종과, 탱화가 그려진 것도, 다 신기했다. 여주는 단청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진정한 가람 배치는 자연을 고려해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국보, 보물, 지방 문화재 등의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할 수 있는가, 절 앞의 벽돌로 된 탑도, 극락전 앞의 탑고, 뭔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데도, 뭔가 달라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마음에 든다. 여주는 풍요로운 땅이었다. 햇살과, 흙이 기름진 곳이었다. 그곳의 강가 사찰이라니, 시내에 있는 절이라니. 다시 차가 있으면 좋겠고, 다시 여행을 다니고 싶고, 하루에 여러..
남자는 시계지-세종대왕릉
나의 큰 외삼촌은 외자 이름이다. 이 영. 참 이상했다. 오얏 리, 꽃뿌리 영이라고 했다. 내 이름도 특이하기에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가를 잘안다. 삼촌은 그러니까 오얏의 꽃뿌리, 삼촌의 삶이 그리 꽃다웠었나, 잘 모르겠다. 꽃다웠던 때도 있었겠지. 큰 조카인 내게 삼촌은 첫 손목 시계를 사셨다. 공책과, 펜과, 책들, 그 모든 것들 아낌없이 주셨다. 세종 대왕릉도 영릉이란다. 꽃뿌리 무덤, 그리고 조선 시대 최초의 합장릉이란다. 한글을 만든 세종 대왕의 무덤이라니,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멀어도 가서 뵈야지. 엄포에 비해 날씨는 견딜만 했다. 바람은 쌀쌀했으나, 햇살이 도탑고 따수웠다. 미세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왕릉으로 올라가기 전, 들른 광장이 흥미로웠다. 중국의 황..
물꽃의 전설
물꽃의 전설을 봤다. 영화관이 아닌 마포 중앙 도서관 홀이었다. 낮에는 미세 먼지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더니, 밤에는 찬 바람이 휘몰아쳐 거리에도 강당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추웠다. 깜깜했고, 추웠다. 나는 가죽 자켓을 입어서 덜덜 떨면서 봤다. 현순직. 1930년생, 상군 해녀, 오전에 "노르마"라는 오페라를 보다 가서일까, 여사제 이야기, 그러니까, 전문직 여성 이야기로 보였다. 고희영 감독도 그렇고, 현순직 제주 해녀 역시 전문직 여성이다. 머리 속에는 이미 바다 지도가 새겨져 있고, 몸으로 손으로 감으로 요령을 평생 익혀온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캄캄하고도 따뜻하면서, 춥고도 두려우면서 아낌없이 베푸는 바다 속에서 물꽃이 되었던 이야기이다. 사실 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말이 필..
지문 사냥꾼에서 홍채 사냥꾼으로
동사무소에 공인 서류를 떼러 갔다. 인터넷으로 떼면 무료, 무인 자동 발급기는 500원 창구에서는 1000원, 기계에서는 늘 그렇듯 잘 되지 않는다. 역시 나는 기계가 싫어해 창구 가서, 가족 관계 증명서 상세를 부탁하다가, 손가락 지문을 잘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공무원이 날 도와준다. 지문을 확인해보겠노라며 엄지르 여러번 대보았다. 물로 닦아가며 반복해서, 왼손 엄지도, 나는 남보다 지문이 많이 연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른쪽 검지 확인해보더니 엄지보다는 낫다며넛, 이걸로 등록을 하려면 사진을 들고 와서, 신분증을 다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어쩌자고, 지문이 다 닳아버렸을까, 지문이 다 닳도록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래서일까, 아이폰이나, 미니도 암호 입력할 때마다 고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