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달임-민어 이야기
이열치열 열은 열로 다스린다고, 복날에는 복달임음식을 먹는다. 더운 날씨로 입맛을 잃어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려고 특별히 장만한 음식들을 먹는다. 수박, 참외, 복숭아처럼 몸의 열을 내려주고 수분을 보충해주는 과일부터 삼계탕, 개장국, 냉면, 서울 경기 지방에서는 육개장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알이 잘 든 민어를 사서, 햇살에 잘 말린 어란, 부레의 맛은 젤리 같다고 하고, 껍질을 불에 구어서 먹고, 살은 회로, 전유어로, 먹고, 남은 뼈와 살은 큰 들통에 넣어 애호박 넣고, 오래 끓여 탕으로 먹었다고 한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 나온다. 내가 처음 먹은 민어이다. 결혼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던 새색시 시절의 이야기이다. 내가 두번째 먹은 민어는 이정임 선생님 댁이었다. 타워 팰리스의 펜트 하우스..
2018년 여름 방학 이야기-100일무렵
올해도 참 덥네요. 어제 김치 냉장고가 돌연사했습니다. 의문사이기도 하고, 자연사이기도 합니다. 안락사는 아닙니다. ㅎ2002년 생, 딤채이니까요. 이로써 저희 집을 떠난 가전 제품이 이제 다섯 손가락을 꼽게 되었네요. 5년전, 2018년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94년 여름이랑 거의 비길 정도였죠. 그해 8월, 갑자기 에어컨이 돌연사합니다. 매일 사상 최고 전력량을 갱신하던 날인데 에어컨은 당연히 재고가 동이 났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에어컨을 구할 길이 없는데다 에어컨을 산다해도, 설치할 때까지 아무 기약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했었죠. 게다가 남편은 당뇨 합병증으로, 수술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요. 저는 일하면서, 남편의 삼시 세끼 챙기느라, 몇 시간 마다 약 발라주고.. 힘들었습니다. 그 해, 고 3..
다 태우려고 해요.
여 에스더 유튜브를 봤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그녀가 참 말을 잘한다. 물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랬는데, 나는 점점 더 자신이 떨어진다. 내가 자존감이 낮아져서, 이제 새로운 말을 배워야겠다. 그녀의 말은 솔직하면서, 유머있고, 절도있다. 그녀도 한지희처럼 일본 여인같은데가 있다. 눈이 작고 이목구비가 적은데 얼굴이 하얗고, 몸 전체의 뼈대가 가늘고 곧다, 어린 시절부터 모아둔, 편지, 성적표, 메달, 각종 기록들을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과자통에 담아둔 것이 마음에 든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아끼는 마음 단정한 행동, 사업가 집안의 다섯 자매로 태어나, 약골이지만, 뛰어난 성적으로 서울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 아들 둘 낳고, 열심히 살다가, 40넘어, 사업..
복숭아 꽃 살구꽃
봄에는 딸기 먹는 낙으로 산다. 딸기처럼 호사스런 과일이 있을까, 한겨울부터 빨간 딸기는 나오기 시작해서 정작 제철에는 아무도 딸기를 찾는 이 없다. 그 모양, 식감, 색깔에 이르기까지, 딸기는 요염하고, 도도하고 암팡지다. 여름이 다가오면 수박주스 먹으면 보낸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복숭아로 여름을 난다. 황도, 노랗게 물컹한게 달아서, 몇 개씩 먹어도,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아도, 계속 들어가는 황도 자기가 얼마나 이쁜지 잘 모르는 여자의 속살처럼, 분홍빛도는 흰, 단단한 과육을 가진 백도, 그러다가 여름이 저물어가기 무렵에는 무화과가 나온다.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 타고 번져가는 길가에서, 파는 무화과를 박스째로 사서, 그 미지근한 단맛을 통째로 입안에 넣는다. 꽃이 없어서 ..
환기를 찾아서-부암동 연가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꼭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식당, 공원, 놀이터, .. 내겐 환기 미술관이다. 나는 그를 종로구 부암동의 환기 미술관을 데려간다. 세검정 들어서, 흥선 대원군 별장 지나, 부암동 동사무소에서 내려, 동양 방앗간과, 치킨 집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환기 미술관이다. 그와 나는 환기 미술관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보니 그는 아주 슬픈 표정이었다. 나는 기뻐 어쩔 줄 모르고, 그보다는 내가 더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환기 미술관에 데려간다. 수화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우주, 그는 방명록에 이름을 썼고 나는 그런 그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결국 나는 며칠 후 다시 혼자 와서 그 방명록을 찾아내어 그 옆에..
LP의 추억, turn the table,
인스타그램에서 가수 김광진씨가 날 팔로우 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아싸, 좋아가 아니라, 아, 해킹 당하셨나보다, 쩝, 출근해서 다시 확인해보니, LP경품 행사가 있었고, 세상에 무려 내가 턴테이블에 당첨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2-3일 내로 휴대용 턴테이블이 내게 도착한다고 한다. 얼마전, 남편과, 밥 먹으며 그 많이 Lp들 다 놔두시고, 전축을 버리셨다고, 어머니 이야기했는데, 이제 내게 전축이 생긴거다. 90년대 CD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CD들을 사모으던 친구가, 소리가 너무 깨끗하다고 기계음같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막귀다, 한때 인사동의 까페에서 일할때 전축을 틀기도 했지만 그런가보다했고, 귀찮았다. 테이프에서 시디로, 음원으로 바뀌던 음악들이 ..
시오타 치하루 in memory
이정우씨가 소개하는 전시회는 꼭 가보려고 한다. 그녀는 흰 옷을 입고 관람했다고 했다. 일본 출신의 작가는 독일에서, 활동중이란다. 한강의 "흰"이란 책에서 영감받은 작품도 있다고 했다. 이정우, 독일, 한강, 도대체 몇개의 보증 수표인가, 게다가, 평창동, 가나 아트라니. 시오타 치하루는 언니다. 그러니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아도,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냥 내게 친척이다. 버지니아 울프, 전혜린, 최영미, 박완서, 곽아람, 박경리, 권여선, 바바라 쿠니, 요네하라 마리같은 , 내가 첫눈에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여인이다. 나는 남자도 좋아하지만, 수많은 언니들을 "추앙"해왔다. 제인 오스틴은 언니가 아니다. 아니군, 한강과 박완서, 박경리도 어쩌면 언니가 아니다. 언니려면, 어딘가 부족한데가 있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