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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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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나를 위해 정찬을 차렸다. 민어를 장만했다. 물론 한여름의 생물은 아니다. 냉동했던 민어를 사다가, 비늘을 긁고, 내장을 다 빼내고,, 소금을 쳐서, 채반위에 올려서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꾸덕하게 말렸다. 사람들이 분명 부서 조기일거라고, 민어가 그렇게 쌀리가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부서와 비슷했다. 부서 조기는 많이 먹어봤기에 그 맛을 잘 안다. 그렇지만 민어라 믿고 해보기로 했다. 장만해봐야 냉동해서 해동한 생선이라 살이 푸석거릴 거라고 했다. 그래도 민어라 믿고 해보기로 했다. 온 집에 비린내를 풍기며 민어를 말리고 기름 내음을 풍기며 민어를 구웠다. 부서가 아니다. 민어인지는 잘모르겠지만 부서는 아니다. 민어같다. 언젠가 이정임 선생님 댁에서 민어 찌게를 대접받은 적 있다. 그때 맛과 닮았다..
The pot call the kettle black, 새 주전자를 산지. 3년이 넘었다. 물건을 사면 오래 쓰는 편인데다, 지금 사면 아마 죽을 때 까지 쓰겠구나 싶기도 하고, 차를 많이 마시니까, 마음에 딱 드는 주전자를 사고 싶었다. 정말 이거다 싶은 주전자를 찾을 때까지 족히 1년 가까이 밀크 팟에 물을 끓일 정도로 심사 숙고했다. 스테인레스일것, 단순한 디자인, 튼튼할 것, 씻기 편할 것, 물이 끓을 때 빽빽거리는 것도, 싫고, 곡선의 모양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종잇장처럼 얇은 재질도 꺼림직했다. 단순하게 묵직하지만, 어딘지 유머스럽고, 안정감이 있는 주전자와 평생을 같이 하고 싶었다. 쓰고 보니, 이런 배우자라면 최상이겠구나 싶다. 북구 어느 나라 겨울 난로가에 겨우내내 올려있는 주전가이길 바랬다. 나는 여전히 인터넷 쇼핑보다는 직접 가서, ..
마포 중앙 도서관에서 이 순신을 찾기 도서관에서 "공대를 가고 싶어졌습니다"라는 책을 보는 순간 공대 가고 싶어하는 제자가 떠올랐다. 빌려와서, 읽어보라며, 다 읽으면 만원 주겠다고 했다. 2주 기한인데, 녀석은 올때마다 자거나, 핸드폰을 보고, 그 책을 읽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1주일 더 반납일을 연장했다. 3주가 지났으니, 시험 기간이니, 들고 오라고 했다. 번번히 잊어버리고 들고 오지 않았다. 마침내, 반납 기한도 넘기고, 꼭 들고오라고 부탁한 날은 아예 수업에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시험이 있다고, 그 어머니께 이미 반납 기한이 10일 넘었다고 말씀드리고, 마포 중앙 도서관에 꼭 둘려줘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학생 대신 그 책을 가져다 주셨고, 나는 한밤중에 도서관에 반납했다. 아마 연체료가 붙었겠지 하여튼, 책을 대출 하..
사치와 평온과 쾌락, 1971년 9월 22일 생의 지금,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다 나는 하루에 3시간 가량 운동한다. 더 많이 잘 먹을 수 있지만, 2끼를 제대로 먹고, 매우 건강하다. 물론, 몇가지 사소한 문제는 있지만, 머리카락이 별로 없다. 이빨이 누렇고 건강하지 않다. 탄력없는 피부, 전혀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고, 가족 모두 날 끔찍히 사랑하고 아낀다. 모두들 나만 바라보고, 날 위한다. 아무런 걱정이 없다. 오직 지금만 보며 산다. 쾌락은 우선 정의를 해야겠다. 범위와 성질을 정하면 보다 명쾌해진다. 내게 쾌락은 매우 사적인 것이라, 비밀로 하겠다. 비밀의 진동과 파장이 클수록, 쾌락지수는 높아진다. 나는 넘치도록 쾌락을 누리며 산다.
김환기의 "항아리와 시", 서정주 "기도" 저는 시방 꼭 텡븨인 항아리같기도 하고 또 텡븨인 들녘같기도, 하옵니다. 주여 한동안 더모진 광풍을 제안에 두시든지 날르는 몇마리의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지와 같이 하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여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해변의 묘지를 찾아서, 평생 어머니 말을 듣지 않다가, 뉘우친 청개구들은 유언대로 해변가에 어머니를 묻고, 물이 불어 떠나갈까, 개굴개굴 운단다. 애나벨리, 혹은 그녀를 잃은 연인의 묘지 헤어질 결심의 서래의 묘지, 김해의 노무현 묘지 불일암 후박 나무 아래 법정 스님의 묘지, 그리고 부곡의 내 아버지 묘지, 눈이 오는 날, 길상사 곳곳에 뿌려진, 자야의 묘지, 바닷가 해변을 걸으며 나는 내 사랑을 기억한다. 추모한다. 그리워한다. 기도한다.
법정 -최고의 스타일 한복 연구가 이영희 선생님은 회색을 가장 좋아한다셨다. 불교 신자라셨다. 유튜브서 일요 스페셜 법정 스님의 모습을 보다보니, 유튜브가 고맙기 그지 없다. 본디 자신은 성미가 괴팍하고, 어디 메어있는 것을 싫어해서, 맞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그랬다. 성미가 괴팍하고 메이는 걸 못견뎌하는,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을 즐기는 어딘가 오래 있다보면 신선한 맛이 사라져 버려, 불일암을 찾아냈다고 한다. 교통이 불편하고, ㅋㅋㅋ 전기가 없고, 물론 전기를 끌어다 쓰려면 얼마든 가능하지만, 근처 물을 마셔보니, 아주 차고 달아서 선택하셨다고, 후박 나무, 의자, 촛불, 방석, 다탁, 스님이 되지 않았더라면 목수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그, 나의 남편도 그랬다. 목수가 되었을 거라고, 처음에는 맞아, 내가 사랑하..
해변의 묘지 문득 깨달았다. 남쪽에 갈 때마다, 내가 바닷가를 찾는 이유를, 그냥 걷다가 돌아오는 이유를,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들으며 해안가를 하염없이 걷는 이유를, 해변의 묘지였다. 내 인생은 실패한 사랑의 무덤, 김현식 노래를 들으며 무덤가를 서성였다. 단, 2년 2개월동안 월든에 머물렀다는 쏘로, 나도 단 2년 2개월간 바다에 머물렀지. 자맥질하고, 헤엄치고, 그 바다에서, 나는 걸어나왔지. 바다에 빠진 이들의 무덤을 보러 간 거다. 해변의 무덤, 성산포, 이포, 다대포, 해운대, 송도, 광안리, 그 바다를 애나벨리와 함께 맨발로 걸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