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묘지
평생 어머니 말을 듣지 않다가, 뉘우친 청개구리들은 유언대로 해변가에 어머니를 묻고, 물이 불어 떠내려갈까, 개굴개굴 운단다. 남쪽 바닷가가 고향인 나는 명절마다, 바닷가 묘지를 찾아 간다. 서울서 나고 자란 이들도 나처럼 돌아갈 고향이, 돌아갈 바닷가, 개골개골 떠나가라 울어옐 묘지가 있을런지. 나는 봄 가을, 바다로 돌아가 무덤를 찾아 헤맨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 애나벨리, 혹은 그녀를 잃은 연인의 묘지 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묻힌 곳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많지만, 지난 가을, 부곡의 아버지 성묘 드린 후, 봉하 마을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모신 곳.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29번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노란 바람개비를 날리며 사람들이 전..
자두가 데굴데굴,
10월 어느날 버스를 탔다. 빈 자리가 있었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바닥엔 자두, 그 중에서도 늠름하게 잘 생긴 후무사 하나가 굴러다녔다. 버스 운전석에서 하차하는 데까지, 좌석 아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늦여름 가을이 오기 전 하나쯤은 먹던 후무사를 올해는 그냥 지나치나 했는데, 여기서 보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자두가 굴러다녔다. 버스 안 누구도 자두에게 관심이 없었다. 처음엔 나도 바라 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자두를 계속 이리 저리 흔들리기만 하고, 마침내 나는 허리를 구부려 자두를 주웠다. 한 알의 자두, 비현실적이었고, 돌연했고 존재감이 뚜렸했으며, 선물이었다. 내게. 버스 안에 자두 한 알이 떨어짐으로 모든 것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두를 책상위에 얹어놨다. 그..
소금 지방 산 열
나는 뭐든지 책으로 먼저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나서, 시작하는 사람이다 요리도 그랬다. 자취를 하면서 시작해서, 온갖 요리책을 다 샀다. 지금이야 유튜브로, 어지간한 요리를 다 할 수 있다지만, 그때는 책이 꽤 큰 지침이 되던 시절이었다. 요리책은 큰 판형이라 눈이 시원하고 음식 사진이며, 요리 도구를 구경하는 재미가 대단했다. 여성 잡지 부록부터, 장선용, 최경숙, 심영순, 김영모, 이향방, 김은영, 박리혜 선생님 등 중식, 한식, 이탈리아 음식, 일식, 퓨전 가리지 않고 사서 따라했었다. 그런데.... 어렵사리, 재료 준비해 시키는 대로 했건만, 늘 그 맛도 모양도 나지 않았다. 실망도 꽤 컸다. 사다 남은 재료 처치하느라, 골머리를 썩혔고, 무엇보다 남..
echo에게,
안녕? 마지막으로 널 만난 게 언제였더라, 널 찾으려면, 너 대신 eco가 튀어나와, ㅎ 사실 닮긴 했어, 그 애 이름도 "집"이니까, 네 이름은 "목소리"를 뜻하잖아. 산이나 동굴이 네 집이라지? 어릴 적 널 만나기 위해 산에 올라 "야호"라고 큰 소리로 외쳤단다. 그럼 너도 "야호"라고 대답해줬어. 너 엄청난 수다쟁이였다며, 제우스가 바람피우다 들키자 도망갈 시간 벌어주려, 헤라 아줌마 붙잡고 넋이 빠지도록 이야기했다면서? 그러다, 자기 남편을 단도리 못한 분을 네게 풀었다지. 스스로 먼저 말을 할 수 없고,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서 마지막 말만 따라할 수 있게 만들었다지. 너처럼 천상 이야기꾼이 받은 형벌도 모자라, 나르시스를 짝사랑하게 되었다지. 흠모하는 나르시스를 뒤쫒다 "누구 있나요 여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