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빵-모스크바의 신사
좋아하는 음식을 물은 적이 있다. 떡볶이, 초코렛, 치킨 등 은 예상했지만, 곱창, 돼지국밥은 의외였다. 대부분 그 당시 유행하는 음식을 꼽는다. 대만 카스테라, 공차 였다가 요즘은 탕후루, 마라탕이라 대답한다. 한데 누군가 "소금"이라고 답했다. 아버지가 요리사셔서 귀한 소금을 여러가지 맛볼 기회가 있었단다. 소금 알갱이를 꺼내 혀 끝에 굴리면, 단맛, 쓴 맛, 짠 맛, 비린 맛, 흙 맛이 느껴진다 했다. 내게 묻는다면 "빵"이다. "빵"을 가장 좋아한다기보다는 "빵"을 마음껏 먹고 싶다. 어릴 적 "빵"은 내가 만질수도 없는 것이었다. 책이나 영화에서만 존재했다. 상상하고 바라만 보면서 애를 태웠다. 빵은 축제였고, 서구, 문화, 세련, 부유의 상징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내 꿈은 "아침은..
강남역 에번저스, 택시에서 부럼 ㅎ
박근혜 정권때 강남역에서 어벤저스를 촬영했다 촬영팀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완전 통제한 채 한국이 영화 어벤저스에서, 멋지게 나오길 기대했다고 한다. 그 결과, 스쳐지나가듯, 강남역 질주 추격신이 나왔다고 들었다. 오늘은 우리도 강남역 파이브 가이 어벤저스 팀이었다. ㅎ 출연진: 박태영, 이유진, 신현우, 이한나, 그리고 택시 운전 기사, 파이브 가이의 햄버거를 먹었다. 개점 당시 12시간 대기했던 다섯둥이네가 ㅎ이제는 2-3시간 이면 먹을 수 있다고 했고, 장조카가 서울 온 기념으로 먹이고 싶어서, 또 대기를 걸었다. 우리 앞은 무려 204명의 어벤져스들, 그 사이에 조카는 피시방 가고, 나는 근처 까페서 기다리기로 한다. 원래 순간을 위해 몇 시간은 물론, 몇 년을 때로는 몇 십년 기다리는 게 인생이..
소오름-오레노 라멘 합정 본점
합정동의 유명한 오레노 라멘집에 갔다. 음식점에서 대기하고 기다리는 거, 평소에도 못한다. 춥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더 곤혹스럽다. 더더군다나, 장조카들이 지방에서 왔고, 뒤의 일정도 빡빡한데, 기다리는 일은 힘들었다. 혼자 먹는 사람 자리는 꾸준히 나더라, 언젠가 혼자 와야지. 2명씩 많이 왔다. 특히 연인들, 아름답고, 씩씩한 커플들, 맞아 저게 인생의 낙이지. 으슬으슬 추운 날, 오소소 소름 돋도록 얇고도 짧게 치장하고 외식하러 가기가 삶의 낙이긴 하지. 서로의 입맛을 맞춰가며 맛집을 찾아 일정을 의논하고 약속 정하고, 기다리고, 막상 그날이 오면, 아침부터 분주하게 채비하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거지. .코트를 입은 남자랑 아주 얇고 짧게 입은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짧은 치마 아..
west side story-서울 대학교 편
큰 조카가 중 3이 되면서, 대학 탐방하려 서울에 왔다. 녀석이 크면 방학마다, 서울에 오기를, 궁궐과, 예술의 전당, 한강과, 남산, 공연과 전시회를 데려갈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꿈은 이루어진다. 새벽 5시 일어나, SRT를 타고 수서역에 9시 29분에 도착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처럼 들어온다. 인사를 하고, 서울 대학으로 간다. 서울대 3대 바보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대 입구역에 내려, 5513버스를 탄다. 관악산은 등산하기 좋아서, 토요일이고 하니, 등산객들이 많다. 관악 고개를 넘어 서울대 입구 기념탑을 지나, 공학관으로 간다. 버드나무골있던 데다, 서울대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과 서울대 출신의 사람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게 벌써, 33년 전이다. 결혼후 임신하고서 순산을 ..
오란의 발
중국에서 나고 자란, 펄 벅은 왕룽과 오란을 내세워 중국 땅을 그렸다. 홀린 듯 대지에 빨려 들어가, 앉은 자리에서 다 봤다. 40년이 지나도, "대지" 속, 오란의 발을 잊을 수 없다. 전족하지 않은, 오란의 발을 왕룽이 싫어하고, 오란은 부끄러워 했다. 실은 박지성의 발이요. 강수진의 발이다. 오란의 발은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나는 발만은 발레리나 강수진을, 캡틴 박지성을 , 그리고 오란을 닮았다. 티눈에 성한 발톱이 없고, 색마저 거무 튀튀하다. 내성 발톱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수태, 발 크림이며, 연고를 선물 받았으나 양말이 답답하여 맨발로 다니다보니, 발 뒤꿈치마저 거칠고 갈라지고 엉망이다. 나는 작년에는 하루 평균 9키로 가량 걸었고, 올해도, 매..
워낭소리
결혼식이 끝나고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땋아서,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올린 머리를 풀면서, 이걸 어떡하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꽃대궐같은 상을 받으면서도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신혼집에서 결혼전 물건을 택배로 받았을 때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병원에서 출산 후 산후 조리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기와 단 둘만 남았을 때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이제 어떡하지 황망하던 우두망찰하던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면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멈춰 버린 거리에서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졸업은 했지만, 갈 곳도 살 집도 아무것도 없던 내가 홀로 서소문에서 서울역 쪽으로 가다가, 이제 어떡하지. 운전 면허를 따고 차를 사서, 연수를 받고서도 처음 차를 운전할 때 이제 어떡하지. 두려움, 이물감, 달..
모스크바의 신사, 나발니 사망
"나발니"의 사망소식을 듣고선, "모스크바의 신사"를 계속 읽을 수가 없다. Amor Towles는 "A Gentleman in Moscow" 에서 메트로폴 호텔에 평생 가택 연급된 구러시아 귀족 알렉산드르 로스토프를 그렸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시대의 변화, 물리적 공간의 제약에 지혜와 긍지로 적응해가며 어떤 상황에서라도 삶에서 아름다움과 목적을 발견해냈다. 몇년이 지나 다시 봐도 대단하지만, 뭔가 불편하다. 미국의 낙관주의와 회복 탄력성이 작가가 평생 누린 풍요와 만나, 하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해서일까, 와인, 캐비어 등의 미식과 고가구, 결투와, 맞춤 정장, 세련된 매너와 교양이 오히려 불편하고 겉돈다. 지극히 연극적이라 , 현실감이 떨어진다. 정치하여 값 비싼 물건들을 옥션에서 구경하는 기분마저 ..